- 4월15일-하루하루가 새로운 봄
- 루하루가 새로운 봄어제까지만 해도 앙상하던 가로수에여린 잎이 촘촘히 올라와 있다.꽃망울을 힘겹게 터뜨리던 벚꽃은 곳곳에서 만개해 봄바람에 흔들리고,가지 위에 눈부시게 얹힌 소담스러..
에세이
- 봄나물에 투영된 재래시장의 단상 염정금 오매 환장하겠네 근질대는 이 기운 어찌할 거나 눈 녹는 개천이 돌돌 휘돌면 버들강아지 통통하게 물이 오르고 잦은 봄비에 가지마다 톡톡 새순이 돋는 봄 보릿고개 시절 고봉으로 떠 담아도 늘 허기져 볼 언저리 마른버짐 피었던 우리들 밥은 묵었냐 몸은 괜찮냐 입버릇처럼 챙겨주시는 할매 목소리 밥 굶지 않은 21세기에도 자꾸만 환청으로 들려와 바구니 옆에 끼고 논두렁 밭두렁을 휘돌며 갓 싹 올린 달래 냉이 씀바귀를 찾는다 자작시 봄날처럼 학기말 봄 방학이면 시골 할머니 댁에 다녀오곤 했다. 그 때마다 옆에 사는 동갑내기 아이와 들로 산으로 쑥과 냉이, 달래 등 봄나물을 캐러 다녔다. 외할머니는 캐온 나물을 데쳐 들기름 잔뜩 넣어 무쳐 주었고 나물 캐느라 밥 때를 놓친 나는 밥 두 그릇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곤 했다. 그래서일까? 할머니 댁에 가면 늘 할머니의 인사가 “밥은 먹었냐? 몸은 괜찮냐?” 였고 행여 손주 살 내릴까 싶어서인지 고봉으로 밥을 퍼 주셨다. 김장김치가 적당하게 익는 것을 넘어 시큼해진 요즘, 달래. 냉이, 씀바귀는 향긋함으로 입맛을 살리고도 겨우내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과 무기질을 아낌없이 제공한다. 하지만 이런 봄나물이 가난한 시절 곡식을 대신했던 아픈 역사를 품고 있다는 것을 아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될까? 쌀은 떨어지고 보리 수확마저 먼 보리 고개 시절, 산야의 나물로도 배를 채우지 못해 나무껍질이나 풀뿌리로 배를 채워야했다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곡절한 사연을 들었던 세대다. 3월에 들어서면서 길 가 풀숲을 헤치고 쑥과 냉이가 얼굴을 내밀고 있다. 간혹 동천 변이나 공원 변에서 쑥과 냉이를 캐는 아주머니가 한 둘 눈에 띄긴 하지만 요즘엔 쑥, 냉이, 달래 봄나물들이 대량으로 재배되어서인지 바구니 옆에 끼고 나물 캐러 다니는 처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며칠 전 농협마트에 들렸다 포장된 쑥과 보리 싹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 할머니와 어머니가 자주 끓여주시던 토장국 생각이 나 사 왔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그랬듯 쌀 뜨물 진하게 받고 보리새우까지 넣어 끓였는데도 향이 진하지 않았다. 하기야 요즘 나물도 대량으로 재배하기 때문에 노지 나물과는 맛이 다를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실망이 컸다. ‘남창 재래시장에 가면 분명 노지 나물이 있을 거야.’ 어릴 적 논두렁 밭두렁을 헤매며 캤던 나물을 떠 올리며 아래 장 채소 전을 찾았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채소 전엔 줄기가 긴 재배 쑥과 다른 짧고 도톰한 줄기에 잎이 풍성한 쑥부터 시작해 잎보다 뿌리가 통통한 냉이, 달래, 여린 머위 등 봄나물들이 오는 손님들을 반겼다. 한눈에 봐도 논두렁, 밭두렁에서 캐온 야생 봄나물임을 알 수 있었다. 어릴 적 할머니 댁에 가면 겨울엔 쌀뜨물 진하게 받아 시래깃국을 뜨끈하게 끓여 주시고. 봄이면 손수 캔 쑥에 쌀가루를 넣어 만든 쑥버무리와 냉이, 달래, 씀바귀를 캐와 조물조물 무친 봄나물로 입맛을 돋우었다. 그리고 여름, 가을이면 가지나물, 밀가루 묻힌 여린 고추무침으로 밥 한 그릇을 뚝딱 먹게 하곤 해서인지 지금도 몸살 기운이 있거나 입맛을 잃을 때면 할머니의 시래깃국과 봄나물 반찬이 생각나곤 한다. 그래서일까? “밥은 먹었냐? 몸은 괜찮냐?” 봄나물 파는 할머니 모습에서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투영되었고 봄 향기를 넘어 초등 시절, 외할머니 댁을 찾을 때면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하셨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리고 그 앞에 놓인 쑥과 냉이, 달래가 반기는 것이 마치 할머니 댁에 들어선 듯 푸근했다. 현산면에 사신다는 할머니가 밭둑에서 직접 채취해 왔다는 쑥, 냉이, 달래를 사와 봄 밥상을 차렸다. 봄 도다리쑥국, 냉이나물, 달래장이 곁들어진 밥상! 오랫동안 잊고 산 추억의 빗장을 풀고 아스라한 기억들을 불러들였다. 남편도 봄엔 봄 도다리쑥국이 최고라며 엄지를 척 세웠다. 올봄, 향긋한 봄 밥상을 전한 재래시장은 외할머니의 깊은 정이 배인 봄나물 추억 외에도 어린 시절부터 글을 쓰고 싶다는 야심을 키운 장소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5일 장인 재래시장을 보러 갈 때면 꼭 나를 데리고 갔다. 이것저것 사서 들고 다니려면 힘들어서인지 중간에 나를 세워두고 장을 휘돌며 물건을 사기 위해서였다. 언제나 장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물건을 산 장소에 나를 있게 한 뒤 물건을 사러 다니셨다. 그리고 간간이 사온 생선이나 채소 등을 들고 와 내 곁에 두고 또다시 다른 것을 사러 가셨다. 그 사이 우두커니 서 있던 나는 기다림이 지루하기보다 나만의 즐거운 상상에 젖곤했다. 물건을 앞에 두고 꾸벅꾸벅 조는 꼬막 장수 할머니에게선 갯벌에서 일하던 모습이 상상되고, 수북한 나물 대야 앞에 둔 아주머니에게선 논두렁, 밭두렁을 다니며 나물 캐던 모습이 그려졌다. 그리고 그 사람들과 함께 사는 사람들까지 떠올리며 나만의 이야기를 꾸며 상상하는 즐거움에 취할 수 있었다. 시린 발을 동동 굴려야 하는 맵찬 겨울과 뙤약볕에 구슬땀이 얼굴을 타고 흐르는 여름도 있었지만 달래, 냉이, 씀바귀, 돌나물 등의 각종 나물이 가득한 봄과 감, 밤, 배, 대추 등 풍성한 가을의 재래시장은 무안한 상상력을 키워주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채소 전이나 어물 전에 서 있는 날이면 팔고 사며 하는 이야기 속에서 알아가는 채소, 나물, 생선의 이름은 마치 우리 산야, 바다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정겨웠었다. 이처럼 재래시장은 어릴 적 즐거운 상상력을 키워주기도 하였지만 북적거리며 오가는 사람들과 펄떡이는 생선, 싱싱한 야채 등을 보며 생명의 약동을 일깨우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재래시장의 추억은 어디 이뿐일까. 시장을 다 보신 후 사 주신 설설 끓듯 내어온 뜨끈한 순대 국밥이나 팥죽은 지금까지 잊을 수 없는 맛으로 자리해 곧잘 찾는 음식이다. 어쩌면 사람들을 보며 상상하는 이야기보다 그 끝에 따르는 순대 국밥과 팥죽 때문에 두 말없이 어머니를 따라나섰는지도 모르지만....... 이처럼 전통 5일 장은 대형 마트에서 살 수 없는 우리 토종 재료를 살 수 있는 것을 넘어 사람살이까지 엿보는 재미가 쏠쏠한 곳이였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 찾은 시장에선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이웃, 친지들을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는 정겨움을 통해 그 간 살이의 정보를 듣는 훈훈한 장소라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어물전의 질척임과 비릿한 내음은 바닷사람의 짠 내음 나는 고단함이 전해지고 누릿함이 코를 후비는 육 전에서는 소 한 마리를 잡던 옛 고향 마을 잔치 같은 풍성함이 전해진다. 각종 채소를 파는 채 전에서는 바구니 옆에 끼고 산야를 휘돌던 추억이 새록새록 솟구치곤 하였다. 유리 칸에 말끔하게 진열된 대형 마트의 상품은 잘 다듬어져 편리하긴 하지만 진득한 그리움, 정겨움, 훈훈함이 느껴지지 않아 마음이 울적할 때면 일부러 전통시장인 아랫장을 찾는다. 북적임, 질척임, 소란함, 훈훈함, 넉넉함, 정겨움이 두 팔로 안아 반기는 아랫장에 들어서는 순간 마치 할머니, 어머니 품에 안긴 듯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다음 남창 장엔 어물 전에 들려 봄철 제일 맛있다는 멍게 가득 사와 멍게 비빔밥을 해 먹어야겠다. 봄나물에 투영된 재래시장의 단상 염정금 오매 환장하겠네 근질대는 이 기운 어찌할 거나 눈 녹는 개천이 돌돌 휘돌면 버들강아지 통통하게 물이 오르고 잦은 봄비에 가지마다 톡톡 새순이 돋는 봄 보릿고개 시절 고봉으로 떠 담아도 늘 허기져 볼 언저리 마른버짐 피었던 우리들 밥은 묵었냐 몸은 괜찮냐 입버릇처럼 챙겨주시는 할매 목소리 밥 굶지 않은 21세기에도 자꾸만 환청으로 들려와 바구니 옆에 끼고 논두렁 밭두렁을 휘돌며 갓 싹 올린 달래 냉이 씀바귀를 찾는다 자작시 봄날처럼 학기말 봄 방학이면 시골 할머니 댁에 다녀오곤 했다. 그 때마다 옆에 사는 동갑내기 아이와 들로 산으로 쑥과 냉이, 달래 등 봄나물을 캐러 다녔다. 외할머니는 캐온 나물을 데쳐 들기름 잔뜩 넣어 무쳐 주었고 나물 캐느라 밥 때를 놓친 나는 밥 두 그릇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곤 했다. 그래서일까? 할머니 댁에 가면 늘 할머니의 인사가 “밥은 먹었냐? 몸은 괜찮냐?” 였고 행여 손주 살 내릴까 싶어서인지 고봉으로 밥을 퍼 주셨다. 김장김치가 적당하게 익는 것을 넘어 시큼해진 요즘, 달래. 냉이, 씀바귀는 향긋함으로 입맛을 살리고도 겨우내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과 무기질을 아낌없이 제공한다. 하지만 이런 봄나물이 가난한 시절 곡식을 대신했던 아픈 역사를 품고 있다는 것을 아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될까? 쌀은 떨어지고 보리 수확마저 먼 보리 고개 시절, 산야의 나물로도 배를 채우지 못해 나무껍질이나 풀뿌리로 배를 채워야했다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곡절한 사연을 들었던 세대다. 3월에 들어서면서 길 가 풀숲을 헤치고 쑥과 냉이가 얼굴을 내밀고 있다. 간혹 동천 변이나 공원 변에서 쑥과 냉이를 캐는 아주머니가 한 둘 눈에 띄긴 하지만 요즘엔 쑥, 냉이, 달래 봄나물들이 대량으로 재배되어서인지 바구니 옆에 끼고 나물 캐러 다니는 처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며칠 전 농협마트에 들렸다 포장된 쑥과 보리 싹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 할머니와 어머니가 자주 끓여주시던 토장국 생각이 나 사 왔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그랬듯 쌀 뜨물 진하게 받고 보리새우까지 넣어 끓였는데도 향이 진하지 않았다. 하기야 요즘 나물도 대량으로 재배하기 때문에 노지 나물과는 맛이 다를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실망이 컸다. ‘남창 재래시장에 가면 분명 노지 나물이 있을 거야.’ 어릴 적 논두렁 밭두렁을 헤매며 캤던 나물을 떠 올리며 아래 장 채소 전을 찾았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채소 전엔 줄기가 긴 재배 쑥과 다른 짧고 도톰한 줄기에 잎이 풍성한 쑥부터 시작해 잎보다 뿌리가 통통한 냉이, 달래, 여린 머위 등 봄나물들이 오는 손님들을 반겼다. 한눈에 봐도 논두렁, 밭두렁에서 캐온 야생 봄나물임을 알 수 있었다. 어릴 적 할머니 댁에 가면 겨울엔 쌀뜨물 진하게 받아 시래깃국을 뜨끈하게 끓여 주시고. 봄이면 손수 캔 쑥에 쌀가루를 넣어 만든 쑥버무리와 냉이, 달래, 씀바귀를 캐와 조물조물 무친 봄나물로 입맛을 돋우었다. 그리고 여름, 가을이면 가지나물, 밀가루 묻힌 여린 고추무침으로 밥 한 그릇을 뚝딱 먹게 하곤 해서인지 지금도 몸살 기운이 있거나 입맛을 잃을 때면 할머니의 시래깃국과 봄나물 반찬이 생각나곤 한다. 그래서일까? “밥은 먹었냐? 몸은 괜찮냐?” 봄나물 파는 할머니 모습에서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투영되었고 봄 향기를 넘어 초등 시절, 외할머니 댁을 찾을 때면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하셨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리고 그 앞에 놓인 쑥과 냉이, 달래가 반기는 것이 마치 할머니 댁에 들어선 듯 푸근했다. 현산면에 사신다는 할머니가 밭둑에서 직접 채취해 왔다는 쑥, 냉이, 달래를 사와 봄 밥상을 차렸다. 봄 도다리쑥국, 냉이나물, 달래장이 곁들어진 밥상! 오랫동안 잊고 산 추억의 빗장을 풀고 아스라한 기억들을 불러들였다. 남편도 봄엔 봄 도다리쑥국이 최고라며 엄지를 척 세웠다. 올봄, 향긋한 봄 밥상을 전한 재래시장은 외할머니의 깊은 정이 배인 봄나물 추억 외에도 어린 시절부터 글을 쓰고 싶다는 야심을 키운 장소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5일 장인 재래시장을 보러 갈 때면 꼭 나를 데리고 갔다. 이것저것 사서 들고 다니려면 힘들어서인지 중간에 나를 세워두고 장을 휘돌며 물건을 사기 위해서였다. 언제나 장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물건을 산 장소에 나를 있게 한 뒤 물건을 사러 다니셨다. 그리고 간간이 사온 생선이나 채소 등을 들고 와 내 곁에 두고 또다시 다른 것을 사러 가셨다. 그 사이 우두커니 서 있던 나는 기다림이 지루하기보다 나만의 즐거운 상상에 젖곤했다. 물건을 앞에 두고 꾸벅꾸벅 조는 꼬막 장수 할머니에게선 갯벌에서 일하던 모습이 상상되고, 수북한 나물 대야 앞에 둔 아주머니에게선 논두렁, 밭두렁을 다니며 나물 캐던 모습이 그려졌다. 그리고 그 사람들과 함께 사는 사람들까지 떠올리며 나만의 이야기를 꾸며 상상하는 즐거움에 취할 수 있었다. 시린 발을 동동 굴려야 하는 맵찬 겨울과 뙤약볕에 구슬땀이 얼굴을 타고 흐르는 여름도 있었지만 달래, 냉이, 씀바귀, 돌나물 등의 각종 나물이 가득한 봄과 감, 밤, 배, 대추 등 풍성한 가을의 재래시장은 무안한 상상력을 키워주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채소 전이나 어물 전에 서 있는 날이면 팔고 사며 하는 이야기 속에서 알아가는 채소, 나물, 생선의 이름은 마치 우리 산야, 바다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정겨웠었다. 이처럼 재래시장은 어릴 적 즐거운 상상력을 키워주기도 하였지만 북적거리며 오가는 사람들과 펄떡이는 생선, 싱싱한 야채 등을 보며 생명의 약동을 일깨우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재래시장의 추억은 어디 이뿐일까. 시장을 다 보신 후 사 주신 설설 끓듯 내어온 뜨끈한 순대 국밥이나 팥죽은 지금까지 잊을 수 없는 맛으로 자리해 곧잘 찾는 음식이다. 어쩌면 사람들을 보며 상상하는 이야기보다 그 끝에 따르는 순대 국밥과 팥죽 때문에 두 말없이 어머니를 따라나섰는지도 모르지만....... 이처럼 전통 5일 장은 대형 마트에서 살 수 없는 우리 토종 재료를 살 수 있는 것을 넘어 사람살이까지 엿보는 재미가 쏠쏠한 곳이였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 찾은 시장에선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이웃, 친지들을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는 정겨움을 통해 그 간 살이의 정보를 듣는 훈훈한 장소라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어물전의 질척임과 비릿한 내음은 바닷사람의 짠 내음 나는 고단함이 전해지고 누릿함이 코를 후비는 육 전에서는 소 한 마리를 잡던 옛 고향 마을 잔치 같은 풍성함이 전해진다. 각종 채소를 파는 채 전에서는 바구니 옆에 끼고 산야를 휘돌던 추억이 새록새록 솟구치곤 하였다. 유리 칸에 말끔하게 진열된 대형 마트의 상품은 잘 다듬어져 편리하긴 하지만 진득한 그리움, 정겨움, 훈훈함이 느껴지지 않아 마음이 울적할 때면 일부러 전통시장인 아랫장을 찾는다. 북적임, 질척임, 소란함, 훈훈함, 넉넉함, 정겨움이 두 팔로 안아 반기는 아랫장에 들어서는 순간 마치 할머니, 어머니 품에 안긴 듯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다음 남창 장엔 어물 전에 들려 봄철 제일 맛있다는 멍게 가득 사와 멍게 비빔밥을 해 먹어야겠다. 봄나물에 투영된 재래시장의 단상 염정금 오매 환장하겠네 근질대는 이 기운 어찌할 거나 눈 녹는 개천이 돌돌 휘돌면 버들강아지 통통하게 물이 오르고 잦은 봄비에 가지마다 톡톡 새순이 돋는 봄 보릿고개 시절 고봉으로 떠 담아도 늘 허기져 볼 언저리 마른버짐 피었던 우리들 밥은 묵었냐 몸은 괜찮냐 입버릇처럼 챙겨주시는 할매 목소리 밥 굶지 않은 21세기에도 자꾸만 환청으로 들려와 바구니 옆에 끼고 논두렁 밭두렁을 휘돌며 갓 싹 올린 달래 냉이 씀바귀를 찾는다 자작시 봄날처럼 학기말 봄 방학이면 시골 할머니 댁에 다녀오곤 했다. 그 때마다 옆에 사는 동갑내기 아이와 들로 산으로 쑥과 냉이, 달래 등 봄나물을 캐러 다녔다. 외할머니는 캐온 나물을 데쳐 들기름 잔뜩 넣어 무쳐 주었고 나물 캐느라 밥 때를 놓친 나는 밥 두 그릇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곤 했다. 그래서일까? 할머니 댁에 가면 늘 할머니의 인사가 “밥은 먹었냐? 몸은 괜찮냐?” 였고 행여 손주 살 내릴까 싶어서인지 고봉으로 밥을 퍼 주셨다. 김장김치가 적당하게 익는 것을 넘어 시큼해진 요즘, 달래. 냉이, 씀바귀는 향긋함으로 입맛을 살리고도 겨우내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과 무기질을 아낌없이 제공한다. 하지만 이런 봄나물이 가난한 시절 곡식을 대신했던 아픈 역사를 품고 있다는 것을 아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될까? 쌀은 떨어지고 보리 수확마저 먼 보리 고개 시절, 산야의 나물로도 배를 채우지 못해 나무껍질이나 풀뿌리로 배를 채워야했다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곡절한 사연을 들었던 세대다. 3월에 들어서면서 길 가 풀숲을 헤치고 쑥과 냉이가 얼굴을 내밀고 있다. 간혹 동천 변이나 공원 변에서 쑥과 냉이를 캐는 아주머니가 한 둘 눈에 띄긴 하지만 요즘엔 쑥, 냉이, 달래 봄나물들이 대량으로 재배되어서인지 바구니 옆에 끼고 나물 캐러 다니는 처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며칠 전 농협마트에 들렸다 포장된 쑥과 보리 싹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 할머니와 어머니가 자주 끓여주시던 토장국 생각이 나 사 왔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그랬듯 쌀 뜨물 진하게 받고 보리새우까지 넣어 끓였는데도 향이 진하지 않았다. 하기야 요즘 나물도 대량으로 재배하기 때문에 노지 나물과는 맛이 다를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실망이 컸다. ‘남창 재래시장에 가면 분명 노지 나물이 있을 거야.’ 어릴 적 논두렁 밭두렁을 헤매며 캤던 나물을 떠 올리며 아래 장 채소 전을 찾았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채소 전엔 줄기가 긴 재배 쑥과 다른 짧고 도톰한 줄기에 잎이 풍성한 쑥부터 시작해 잎보다 뿌리가 통통한 냉이, 달래, 여린 머위 등 봄나물들이 오는 손님들을 반겼다. 한눈에 봐도 논두렁, 밭두렁에서 캐온 야생 봄나물임을 알 수 있었다. 어릴 적 할머니 댁에 가면 겨울엔 쌀뜨물 진하게 받아 시래깃국을 뜨끈하게 끓여 주시고. 봄이면 손수 캔 쑥에 쌀가루를 넣어 만든 쑥버무리와 냉이, 달래, 씀바귀를 캐와 조물조물 무친 봄나물로 입맛을 돋우었다. 그리고 여름, 가을이면 가지나물, 밀가루 묻힌 여린 고추무침으로 밥 한 그릇을 뚝딱 먹게 하곤 해서인지 지금도 몸살 기운이 있거나 입맛을 잃을 때면 할머니의 시래깃국과 봄나물 반찬이 생각나곤 한다. 그래서일까? “밥은 먹었냐? 몸은 괜찮냐?” 봄나물 파는 할머니 모습에서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투영되었고 봄 향기를 넘어 초등 시절, 외할머니 댁을 찾을 때면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하셨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리고 그 앞에 놓인 쑥과 냉이, 달래가 반기는 것이 마치 할머니 댁에 들어선 듯 푸근했다. 현산면에 사신다는 할머니가 밭둑에서 직접 채취해 왔다는 쑥, 냉이, 달래를 사와 봄 밥상을 차렸다. 봄 도다리쑥국, 냉이나물, 달래장이 곁들어진 밥상! 오랫동안 잊고 산 추억의 빗장을 풀고 아스라한 기억들을 불러들였다. 남편도 봄엔 봄 도다리쑥국이 최고라며 엄지를 척 세웠다. 올봄, 향긋한 봄 밥상을 전한 재래시장은 외할머니의 깊은 정이 배인 봄나물 추억 외에도 어린 시절부터 글을 쓰고 싶다는 야심을 키운 장소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5일 장인 재래시장을 보러 갈 때면 꼭 나를 데리고 갔다. 이것저것 사서 들고 다니려면 힘들어서인지 중간에 나를 세워두고 장을 휘돌며 물건을 사기 위해서였다. 언제나 장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물건을 산 장소에 나를 있게 한 뒤 물건을 사러 다니셨다. 그리고 간간이 사온 생선이나 채소 등을 들고 와 내 곁에 두고 또다시 다른 것을 사러 가셨다. 그 사이 우두커니 서 있던 나는 기다림이 지루하기보다 나만의 즐거운 상상에 젖곤했다. 물건을 앞에 두고 꾸벅꾸벅 조는 꼬막 장수 할머니에게선 갯벌에서 일하던 모습이 상상되고, 수북한 나물 대야 앞에 둔 아주머니에게선 논두렁, 밭두렁을 다니며 나물 캐던 모습이 그려졌다. 그리고 그 사람들과 함께 사는 사람들까지 떠올리며 나만의 이야기를 꾸며 상상하는 즐거움에 취할 수 있었다. 시린 발을 동동 굴려야 하는 맵찬 겨울과 뙤약볕에 구슬땀이 얼굴을 타고 흐르는 여름도 있었지만 달래, 냉이, 씀바귀, 돌나물 등의 각종 나물이 가득한 봄과 감, 밤, 배, 대추 등 풍성한 가을의 재래시장은 무안한 상상력을 키워주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채소 전이나 어물 전에 서 있는 날이면 팔고 사며 하는 이야기 속에서 알아가는 채소, 나물, 생선의 이름은 마치 우리 산야, 바다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정겨웠었다. 이처럼 재래시장은 어릴 적 즐거운 상상력을 키워주기도 하였지만 북적거리며 오가는 사람들과 펄떡이는 생선, 싱싱한 야채 등을 보며 생명의 약동을 일깨우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재래시장의 추억은 어디 이뿐일까. 시장을 다 보신 후 사 주신 설설 끓듯 내어온 뜨끈한 순대 국밥이나 팥죽은 지금까지 잊을 수 없는 맛으로 자리해 곧잘 찾는 음식이다. 어쩌면 사람들을 보며 상상하는 이야기보다 그 끝에 따르는 순대 국밥과 팥죽 때문에 두 말없이 어머니를 따라나섰는지도 모르지만....... 이처럼 전통 5일 장은 대형 마트에서 살 수 없는 우리 토종 재료를 살 수 있는 것을 넘어 사람살이까지 엿보는 재미가 쏠쏠한 곳이였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 찾은 시장에선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이웃, 친지들을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는 정겨움을 통해 그 간 살이의 정보를 듣는 훈훈한 장소라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어물전의 질척임과 비릿한 내음은 바닷사람의 짠 내음 나는 고단함이 전해지고 누릿함이 코를 후비는 육 전에서는 소 한 마리를 잡던 옛 고향 마을 잔치 같은 풍성함이 전해진다. 각종 채소를 파는 채 전에서는 바구니 옆에 끼고 산야를 휘돌던 추억이 새록새록 솟구치곤 하였다. 유리 칸에 말끔하게 진열된 대형 마트의 상품은 잘 다듬어져 편리하긴 하지만 진득한 그리움, 정겨움, 훈훈함이 느껴지지 않아 마음이 울적할 때면 일부러 전통시장인 아랫장을 찾는다. 북적임, 질척임, 소란함, 훈훈함, 넉넉함, 정겨움이 두 팔로 안아 반기는 아랫장에 들어서는 순간 마치 할머니, 어머니 품에 안긴 듯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다음 남창 장엔 어물 전에 들려 봄철 제일 맛있다는 멍게 가득 사와 멍게 비빔밥을 해 먹어야겠다. 봄나물에 투영된 재래시장의 단상 염정금 오매 환장하겠네 근질대는 이 기운 어찌할 거나 눈 녹는 개천이 돌돌 휘돌면 버들강아지 통통하게 물이 오르고 잦은 봄비에 가지마다 톡톡 새순이 돋는 봄 보릿고개 시절 고봉으로 떠 담아도 늘 허기져 볼 언저리 마른버짐 피었던 우리들 밥은 묵었냐 몸은 괜찮냐 입버릇처럼 챙겨주시는 할매 목소리 밥 굶지 않은 21세기에도 자꾸만 환청으로 들려와 바구니 옆에 끼고 논두렁 밭두렁을 휘돌며 갓 싹 올린 달래 냉이 씀바귀를 찾는다 자작시 봄날처럼 학기말 봄 방학이면 시골 할머니 댁에 다녀오곤 했다. 그 때마다 옆에 사는 동갑내기 아이와 들로 산으로 쑥과 냉이, 달래 등 봄나물을 캐러 다녔다. 외할머니는 캐온 나물을 데쳐 들기름 잔뜩 넣어 무쳐 주었고 나물 캐느라 밥 때를 놓친 나는 밥 두 그릇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곤 했다. 그래서일까? 할머니 댁에 가면 늘 할머니의 인사가 “밥은 먹었냐? 몸은 괜찮냐?” 였고 행여 손주 살 내릴까 싶어서인지 고봉으로 밥을 퍼 주셨다. 김장김치가 적당하게 익는 것을 넘어 시큼해진 요즘, 달래. 냉이, 씀바귀는 향긋함으로 입맛을 살리고도 겨우내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과 무기질을 아낌없이 제공한다. 하지만 이런 봄나물이 가난한 시절 곡식을 대신했던 아픈 역사를 품고 있다는 것을 아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될까? 쌀은 떨어지고 보리 수확마저 먼 보리 고개 시절, 산야의 나물로도 배를 채우지 못해 나무껍질이나 풀뿌리로 배를 채워야했다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곡절한 사연을 들었던 세대다. 3월에 들어서면서 길 가 풀숲을 헤치고 쑥과 냉이가 얼굴을 내밀고 있다. 간혹 동천 변이나 공원 변에서 쑥과 냉이를 캐는 아주머니가 한 둘 눈에 띄긴 하지만 요즘엔 쑥, 냉이, 달래 봄나물들이 대량으로 재배되어서인지 바구니 옆에 끼고 나물 캐러 다니는 처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며칠 전 농협마트에 들렸다 포장된 쑥과 보리 싹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 할머니와 어머니가 자주 끓여주시던 토장국 생각이 나 사 왔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그랬듯 쌀 뜨물 진하게 받고 보리새우까지 넣어 끓였는데도 향이 진하지 않았다. 하기야 요즘 나물도 대량으로 재배하기 때문에 노지 나물과는 맛이 다를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실망이 컸다. ‘남창 재래시장에 가면 분명 노지 나물이 있을 거야.’ 어릴 적 논두렁 밭두렁을 헤매며 캤던 나물을 떠 올리며 아래 장 채소 전을 찾았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채소 전엔 줄기가 긴 재배 쑥과 다른 짧고 도톰한 줄기에 잎이 풍성한 쑥부터 시작해 잎보다 뿌리가 통통한 냉이, 달래, 여린 머위 등 봄나물들이 오는 손님들을 반겼다. 한눈에 봐도 논두렁, 밭두렁에서 캐온 야생 봄나물임을 알 수 있었다. 어릴 적 할머니 댁에 가면 겨울엔 쌀뜨물 진하게 받아 시래깃국을 뜨끈하게 끓여 주시고. 봄이면 손수 캔 쑥에 쌀가루를 넣어 만든 쑥버무리와 냉이, 달래, 씀바귀를 캐와 조물조물 무친 봄나물로 입맛을 돋우었다. 그리고 여름, 가을이면 가지나물, 밀가루 묻힌 여린 고추무침으로 밥 한 그릇을 뚝딱 먹게 하곤 해서인지 지금도 몸살 기운이 있거나 입맛을 잃을 때면 할머니의 시래깃국과 봄나물 반찬이 생각나곤 한다. 그래서일까? “밥은 먹었냐? 몸은 괜찮냐?” 봄나물 파는 할머니 모습에서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투영되었고 봄 향기를 넘어 초등 시절, 외할머니 댁을 찾을 때면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하셨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리고 그 앞에 놓인 쑥과 냉이, 달래가 반기는 것이 마치 할머니 댁에 들어선 듯 푸근했다. 현산면에 사신다는 할머니가 밭둑에서 직접 채취해 왔다는 쑥, 냉이, 달래를 사와 봄 밥상을 차렸다. 봄 도다리쑥국, 냉이나물, 달래장이 곁들어진 밥상! 오랫동안 잊고 산 추억의 빗장을 풀고 아스라한 기억들을 불러들였다. 남편도 봄엔 봄 도다리쑥국이 최고라며 엄지를 척 세웠다. 올봄, 향긋한 봄 밥상을 전한 재래시장은 외할머니의 깊은 정이 배인 봄나물 추억 외에도 어린 시절부터 글을 쓰고 싶다는 야심을 키운 장소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5일 장인 재래시장을 보러 갈 때면 꼭 나를 데리고 갔다. 이것저것 사서 들고 다니려면 힘들어서인지 중간에 나를 세워두고 장을 휘돌며 물건을 사기 위해서였다. 언제나 장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물건을 산 장소에 나를 있게 한 뒤 물건을 사러 다니셨다. 그리고 간간이 사온 생선이나 채소 등을 들고 와 내 곁에 두고 또다시 다른 것을 사러 가셨다. 그 사이 우두커니 서 있던 나는 기다림이 지루하기보다 나만의 즐거운 상상에 젖곤했다. 물건을 앞에 두고 꾸벅꾸벅 조는 꼬막 장수 할머니에게선 갯벌에서 일하던 모습이 상상되고, 수북한 나물 대야 앞에 둔 아주머니에게선 논두렁, 밭두렁을 다니며 나물 캐던 모습이 그려졌다. 그리고 그 사람들과 함께 사는 사람들까지 떠올리며 나만의 이야기를 꾸며 상상하는 즐거움에 취할 수 있었다. 시린 발을 동동 굴려야 하는 맵찬 겨울과 뙤약볕에 구슬땀이 얼굴을 타고 흐르는 여름도 있었지만 달래, 냉이, 씀바귀, 돌나물 등의 각종 나물이 가득한 봄과 감, 밤, 배, 대추 등 풍성한 가을의 재래시장은 무안한 상상력을 키워주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채소 전이나 어물 전에 서 있는 날이면 팔고 사며 하는 이야기 속에서 알아가는 채소, 나물, 생선의 이름은 마치 우리 산야, 바다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정겨웠었다. 이처럼 재래시장은 어릴 적 즐거운 상상력을 키워주기도 하였지만 북적거리며 오가는 사람들과 펄떡이는 생선, 싱싱한 야채 등을 보며 생명의 약동을 일깨우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재래시장의 추억은 어디 이뿐일까. 시장을 다 보신 후 사 주신 설설 끓듯 내어온 뜨끈한 순대 국밥이나 팥죽은 지금까지 잊을 수 없는 맛으로 자리해 곧잘 찾는 음식이다. 어쩌면 사람들을 보며 상상하는 이야기보다 그 끝에 따르는 순대 국밥과 팥죽 때문에 두 말없이 어머니를 따라나섰는지도 모르지만....... 이처럼 전통 5일 장은 대형 마트에서 살 수 없는 우리 토종 재료를 살 수 있는 것을 넘어 사람살이까지 엿보는 재미가 쏠쏠한 곳이였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 찾은 시장에선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이웃, 친지들을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는 정겨움을 통해 그 간 살이의 정보를 듣는 훈훈한 장소라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어물전의 질척임과 비릿한 내음은 바닷사람의 짠 내음 나는 고단함이 전해지고 누릿함이 코를 후비는 육 전에서는 소 한 마리를 잡던 옛 고향 마을 잔치 같은 풍성함이 전해진다. 각종 채소를 파는 채 전에서는 바구니 옆에 끼고 산야를 휘돌던 추억이 새록새록 솟구치곤 하였다. 유리 칸에 말끔하게 진열된 대형 마트의 상품은 잘 다듬어져 편리하긴 하지만 진득한 그리움, 정겨움, 훈훈함이 느껴지지 않아 마음이 울적할 때면 일부러 전통시장인 아랫장을 찾는다. 북적임, 질척임, 소란함, 훈훈함, 넉넉함, 정겨움이 두 팔로 안아 반기는 아랫장에 들어서는 순간 마치 할머니, 어머니 품에 안긴 듯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다음 남창 장엔 어물 전에 들려 봄철 제일 맛있다는 멍게 가득 사와 멍게 비빔밥을 해 먹어야겠다. ㅈ 봄나물에 투영된 재래시장의 단상 염정금 오매 환장하겠네 근질대는 이 기운 어찌할 거나 눈 녹는 개천이 돌돌 휘돌면 버들강아지 통통하게 물이 오르고 잦은 봄비에 가지마다 톡톡 새순이 돋는 봄 보릿고개 시절 고봉으로 떠 담아도 늘 허기져 볼 언저리 마른버짐 피었던 우리들 밥은 묵었냐 몸은 괜찮냐 입버릇처럼 챙겨주시는 할매 목소리 밥 굶지 않은 21세기에도 자꾸만 환청으로 들려와 바구니 옆에 끼고 논두렁 밭두렁을 휘돌며 갓 싹 올린 달래 냉이 씀바귀를 찾는다 자작시 봄날처럼 학기말 봄 방학이면 시골 할머니 댁에 다녀오곤 했다. 그 때마다 옆에 사는 동갑내기 아이와 들로 산으로 쑥과 냉이, 달래 등 봄나물을 캐러 다녔다. 외할머니는 캐온 나물을 데쳐 들기름 잔뜩 넣어 무쳐 주었고 나물 캐느라 밥 때를 놓친 나는 밥 두 그릇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곤 했다. 그래서일까? 할머니 댁에 가면 늘 할머니의 인사가 “밥은 먹었냐? 몸은 괜찮냐?” 였고 행여 손주 살 내릴까 싶어서인지 고봉으로 밥을 퍼 주셨다. 김장김치가 적당하게 익는 것을 넘어 시큼해진 요즘, 달래. 냉이, 씀바귀는 향긋함으로 입맛을 살리고도 겨우내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과 무기질을 아낌없이 제공한다. 하지만 이런 봄나물이 가난한 시절 곡식을 대신했던 아픈 역사를 품고 있다는 것을 아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될까? 쌀은 떨어지고 보리 수확마저 먼 보리 고개 시절, 산야의 나물로도 배를 채우지 못해 나무껍질이나 풀뿌리로 배를 채워야했다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곡절한 사연을 들었던 세대다. 3월에 들어서면서 길 가 풀숲을 헤치고 쑥과 냉이가 얼굴을 내밀고 있다. 간혹 동천 변이나 공원 변에서 쑥과 냉이를 캐는 아주머니가 한 둘 눈에 띄긴 하지만 요즘엔 쑥, 냉이, 달래 봄나물들이 대량으로 재배되어서인지 바구니 옆에 끼고 나물 캐러 다니는 처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며칠 전 농협마트에 들렸다 포장된 쑥과 보리 싹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 할머니와 어머니가 자주 끓여주시던 토장국 생각이 나 사 왔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그랬듯 쌀 뜨물 진하게 받고 보리새우까지 넣어 끓였는데도 향이 진하지 않았다. 하기야 요즘 나물도 대량으로 재배하기 때문에 노지 나물과는 맛이 다를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실망이 컸다. ‘남창 재래시장에 가면 분명 노지 나물이 있을 거야.’ 어릴 적 논두렁 밭두렁을 헤매며 캤던 나물을 떠 올리며 아래 장 채소 전을 찾았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채소 전엔 줄기가 긴 재배 쑥과 다른 짧고 도톰한 줄기에 잎이 풍성한 쑥부터 시작해 잎보다 뿌리가 통통한 냉이, 달래, 여린 머위 등 봄나물들이 오는 손님들을 반겼다. 한눈에 봐도 논두렁, 밭두렁에서 캐온 야생 봄나물임을 알 수 있었다. 어릴 적 할머니 댁에 가면 겨울엔 쌀뜨물 진하게 받아 시래깃국을 뜨끈하게 끓여 주시고. 봄이면 손수 캔 쑥에 쌀가루를 넣어 만든 쑥버무리와 냉이, 달래, 씀바귀를 캐와 조물조물 무친 봄나물로 입맛을 돋우었다. 그리고 여름, 가을이면 가지나물, 밀가루 묻힌 여린 고추무침으로 밥 한 그릇을 뚝딱 먹게 하곤 해서인지 지금도 몸살 기운이 있거나 입맛을 잃을 때면 할머니의 시래깃국과 봄나물 반찬이 생각나곤 한다. 그래서일까? “밥은 먹었냐? 몸은 괜찮냐?” 봄나물 파는 할머니 모습에서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투영되었고 봄 향기를 넘어 초등 시절, 외할머니 댁을 찾을 때면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하셨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리고 그 앞에 놓인 쑥과 냉이, 달래가 반기는 것이 마치 할머니 댁에 들어선 듯 푸근했다. 현산면에 사신다는 할머니가 밭둑에서 직접 채취해 왔다는 쑥, 냉이, 달래를 사와 봄 밥상을 차렸다. 봄 도다리쑥국, 냉이나물, 달래장이 곁들어진 밥상! 오랫동안 잊고 산 추억의 빗장을 풀고 아스라한 기억들을 불러들였다. 남편도 봄엔 봄 도다리쑥국이 최고라며 엄지를 척 세웠다. 올봄, 향긋한 봄 밥상을 전한 재래시장은 외할머니의 깊은 정이 배인 봄나물 추억 외에도 어린 시절부터 글을 쓰고 싶다는 야심을 키운 장소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5일 장인 재래시장을 보러 갈 때면 꼭 나를 데리고 갔다. 이것저것 사서 들고 다니려면 힘들어서인지 중간에 나를 세워두고 장을 휘돌며 물건을 사기 위해서였다. 언제나 장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물건을 산 장소에 나를 있게 한 뒤 물건을 사러 다니셨다. 그리고 간간이 사온 생선이나 채소 등을 들고 와 내 곁에 두고 또다시 다른 것을 사러 가셨다. 그 사이 우두커니 서 있던 나는 기다림이 지루하기보다 나만의 즐거운 상상에 젖곤했다. 물건을 앞에 두고 꾸벅꾸벅 조는 꼬막 장수 할머니에게선 갯벌에서 일하던 모습이 상상되고, 수북한 나물 대야 앞에 둔 아주머니에게선 논두렁, 밭두렁을 다니며 나물 캐던 모습이 그려졌다. 그리고 그 사람들과 함께 사는 사람들까지 떠올리며 나만의 이야기를 꾸며 상상하는 즐거움에 취할 수 있었다. 시린 발을 동동 굴려야 하는 맵찬 겨울과 뙤약볕에 구슬땀이 얼굴을 타고 흐르는 여름도 있었지만 달래, 냉이, 씀바귀, 돌나물 등의 각종 나물이 가득한 봄과 감, 밤, 배, 대추 등 풍성한 가을의 재래시장은 무안한 상상력을 키워주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채소 전이나 어물 전에 서 있는 날이면 팔고 사며 하는 이야기 속에서 알아가는 채소, 나물, 생선의 이름은 마치 우리 산야, 바다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정겨웠었다. 이처럼 재래시장은 어릴 적 즐거운 상상력을 키워주기도 하였지만 북적거리며 오가는 사람들과 펄떡이는 생선, 싱싱한 야채 등을 보며 생명의 약동을 일깨우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재래시장의 추억은 어디 이뿐일까. 시장을 다 보신 후 사 주신 설설 끓듯 내어온 뜨끈한 순대 국밥이나 팥죽은 지금까지 잊을 수 없는 맛으로 자리해 곧잘 찾는 음식이다. 어쩌면 사람들을 보며 상상하는 이야기보다 그 끝에 따르는 순대 국밥과 팥죽 때문에 두 말없이 어머니를 따라나섰는지도 모르지만....... 이처럼 전통 5일 장은 대형 마트에서 살 수 없는 우리 토종 재료를 살 수 있는 것을 넘어 사람살이까지 엿보는 재미가 쏠쏠한 곳이였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 찾은 시장에선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이웃, 친지들을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는 정겨움을 통해 그 간 살이의 정보를 듣는 훈훈한 장소라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어물전의 질척임과 비릿한 내음은 바닷사람의 짠 내음 나는 고단함이 전해지고 누릿함이 코를 후비는 육 전에서는 소 한 마리를 잡던 옛 고향 마을 잔치 같은 풍성함이 전해진다. 각종 채소를 파는 채 전에서는 바구니 옆에 끼고 산야를 휘돌던 추억이 새록새록 솟구치곤 하였다. 유리 칸에 말끔하게 진열된 대형 마트의 상품은 잘 다듬어져 편리하긴 하지만 진득한 그리움, 정겨움, 훈훈함이 느껴지지 않아 마음이 울적할 때면 일부러 전통시장인 아랫장을 찾는다. 북적임, 질척임, 소란함, 훈훈함, 넉넉함, 정겨움이 두 팔로 안아 반기는 아랫장에 들어서는 순간 마치 할머니, 어머니 품에 안긴 듯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다음 남창 장엔 어물 전에 들려 봄철 제일 맛있다는 멍게 가득 사와 멍게 비빔밥을 해 먹어야겠다. 2
- 루하기보다 나만의 즐거운 상상에 젖곤했다.물건을 앞에 두고 꾸벅꾸벅 조는 꼬막 장수 할머니에게선 갯벌에서 일하던 모습이 상상되고,수북한 나물 대야 앞에 둔 아주머니에게선 논두렁,밭..
에세이#재래시장
- 소소한일상 하루하루
- 루하루평범한 시간속에내인생이흐른다.일만하고살았으니,이런여유도생겨마음이편안하다.영민이가요새엄마얼굴이좋아보인다고재롱을 부린다 ㆍ욕심 내지않고,이곳에서행복하게살아가자!
작가방
- 4월15일-하루하루가 새로운 봄
- 루하루가 새로운 봄 어제까지만 해도 앙상하던 가로수에 여린 잎이 촘촘히 올라와 있다. 꽃망울을 힘겹게 터뜨리던 벚꽃은 곳곳에서 만개해 봄바람에 흔들리고, 가지 위에 눈부시게 ..
에세이
- 이곳으로 포토에세이를 써야할지 하루하루가
- 요즘은 그저 하루 하루가 살얼음판같다마스크를 일곱시반이면 출근을 한다 하루종일 쓰는 마스크집에들어오면서 겨우 집문앞에서야 마스크를 벗는다그나마 집에서라도 마스크를 벗는데ㅜ이젠 식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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